해외 시장 탐방, 해외 시장 진출, 해외 투자 유치 등 다양한 해외 프로그램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영어를 잘 하는 대표나 직원들이 있는 스타트업들은 직접 피칭 자료를 만들어보지만 스타트업 대부분이 이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맡긴다. 이와 관련한 시장도 형성되어 있다. 아무튼 영문 발표 자료 혹은 영문 피칭 자료는 한번 만들어놓으면 향후 업데이트를 할 수 있어 막막한 스타트업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스타트업이든 해외 스타트업이든 해외 투자가 앞에서 피칭할 때 보면 정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이 벌어진다. 제한 시간 5분에서 10분 동안 피칭을 하는데 대부분 시간은 잘 맞추지만 내용이 허술하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거나 혹은 왜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게 됐는지 배경 얘기로 시간을 거의 반 이상 소비한다.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피칭 시간 절반이 지난 후 제품 또는 서비스가 혁신적이고 차별화됐는지 열변을 토한 후 ‘봤지? 봤지? 우리가 이 정도 개발해서 세상에 내놓으니까 엄청난 반응이 있을거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듣는 사람이 깊은 인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며 영어 피칭을 마무리 한다.

사회를 보면서 이런 피칭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제한이 지나도 컷을 하기가 애매하다. 발표자가 인생 이야기, 제품 우수성만 얘기하고 비즈니스 모델이라든가 혹은 수익 모델, 시장 진입 전략, 타겟 시장 크기, 경쟁사, 타겟 고객 등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아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충격적이지만 자사 제품 우수성만 얘기하고선 ‘Thank you’로 피칭을 끝냈다. 드물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 최초라 경쟁사가 없다”고 발표하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심사위원 또는 해외 투자가들이 이들에게 “그런데 당신이 말한 기술은 이미 영국에서 12년 넘게 실시해오고 있는 것인데 알고 있냐”면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아주고 더 연구해보라고 권유한 경우도 있다.

또 영문 스크립을 외워서 발표하는 경우도 해외 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피칭인지 헷갈리고 해외 투자가 대상 피칭 경험이 없는 원어민 또는 영어 잘 하는 한국 사람이 대신 작성해준 것같아 마치 영어 말하기 대회 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너무 장문의 영어로 말을 하거나 핵심정보가 빠지고 주로 신변잡기식으로 영어 스피킹 콘테스트에 나온 듯한 식으로 발표를 하면 해외 투자가들은 사회자인 필자에게 도리어 물어본다. “혹시 시간을 더 줄 수 없냐. 저 팀의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 모델, 시장 전략, 제품에 대해서 잘 이해가 안 가서 아쉽다”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흥미로운 사건에 휘말려서 뒤가 궁금한데 갑자기 영화가 막을 내린 듯한 느낌이다. 그나마 흥미로운 사건 후가 궁금해지면 나은데 아예 궁금하지도 않은 피칭을 할 경우에는 해외 투자가들이 피칭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스타트업에게 고마워한다.

발표를 마친 해당 스타트업 대표에게 피칭 자료를 누가 만들었냐고 질문하면 “1500만원 정도 비용을 들여 외부 업체에 위탁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의 피칭 자료와 영문 스크립트를 보고나면 속이 쓰려온다.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제대로 담겨있지 않고 담겨 있어도 그냥 영어로 적혀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전략 조차도 제대로 녹아들어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영어 좀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옆에 앉혀 놓고 대표가 직접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왜 해외 투자가 대상 피칭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들을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찾아보지도 않고 피칭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해외 투자가 앞에서 지나치게 제품 설명만 하거나 기술 설명만 하고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격 책정을 어떻게 하고 어떤 전략으로 기존 경쟁사들과 승부를 벌일 것인지, 그리고 시장 크기, 공략 고객이 누구인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갈 것인지 등 정말 핵심적인 내용들은 제대로 발표조차 않고 마무리 하는 피칭이 의외로 많다. 마치 내 제품은 너무 핫 해서 알아서 팔릴 거니까 걱정 말라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왜 내 제품의 천재성을 투자가들이 이해를 못하지 하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역지사지로 보면 의외로 피칭에서 무엇을 발표할지 분명해진다. 해외 투자가는 이 회사에 1억 투자하게 되면 어떻게 10억, 100억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주요 관심사다. 피칭하는 사람은 이 그림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회사의 대표는 어떤 사람이고, 팀 멤버는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어느 시장에 제품을 내놓고 어떤 가격으로 경쟁을 해나갈 것인지,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할 방법이 무엇인지, 현재 어느 정도의 매출과 순이익을 내고 있는지, 어떤 파트너들과 협업을 하는 지 등이 필수적으로 보여줘야할 사항이다. 이런 내용을 듣고 난 후라면 투자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등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많이 부족하더라도 큰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는 투자가가 판단하기에 스타트업의 제품·서비스가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을 때다. 반대로 중요한 요소를 모두 발표하고 피칭 자료도 시각적·내용적으로 우수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누구나 곧바로 따라할 수 있는 소위 ‘문지방(threshold)이 낮은’ 상품을 발표했을 때이다.

물론 일부 피칭 대회에서는 피칭 자료가 너무 부실해 그중 이해하기 가장 좋았던 팀에게 ‘어쩔 수 없이’ 1등상을 준 적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수상을 못한 팀들의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피칭에서 기본적인 사항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면 해외 투자가들은 그대로 패스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이든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서야 한단는 점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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