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 발표 기술자립 위한 M&A, 환경·노동 규제완화도

[비지니스코리아=윤영실 기자] 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 조치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핵심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자체 공급화를 위해 연구개발(R&D) 등에 7년간 7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일본 의존도가 높아 지금 당장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는 100개 핵심 품목의 경우 거침없는 인수합병(M&A)으로 기술확보에 나서는 등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1~5년 내에 자체 공급 안정화를 꾀하기로 했다.

정부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이 담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에 오른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을 포함한 20대 품목의 공급을 1년 안에 안정화시키고, 이를 포함해 100대 품목을 5년 안에 국내에서 자체 조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100대 품목은 업계 의견과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에서 선정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과 일본 거래처의 관계 등을 고려해 세부 품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성 장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성 장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1년 안에 공급안정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20개 품목은 지난달 4일부터 일본의 수출규제 리스트에 오른 플루오린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포함해 안보상 수급 위험이 크고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큰 것들이다.

정부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에서 대체수입선을 발굴하는 기업들을 위해 무역보험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를 통해 소요자금 보증, 공급업체 발굴을 돕기로 했다.

보세구역 저장기간 한도를 없애거나 24시간 통관지원체제를 가동하는 등 물량 확보를 지원하고 관세 혜택도 준다. 국내에서 해당 품목을 생산하는 업체들을 위해서는 총 2732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기술 조기확보를 집중 지원하고 생산시설 확충 인허가도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20대 품목에 비해 시급성은 덜하지만 기술자립에 꼭 필요한 80개 품목의 경우 5년 내에 공급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7년 간 약 7조8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핵심 기술 확보 적기 추진의 중요성을 감안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도 추진한다.

이를테면 시장성이 작아 경제성(B/C)이 나오기 어려운 분야는 적기 투자가 가능하도록 경제성 분석기법 등 대체 평가방법을 하반기부터 적용한다.

과감한 R&D 투자에도 기술개발이 여의치 않을 때를 대비해 M&A, 해외기술 도입 등 개방적 기술 확보도 확대한다. 국내 공급망 핵심품목 중에 기술 확보가 어려운 분야는 과감히 M&A를 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소재·부품·장비 전문기업 인수금액에 대해 법인세 세액공제(신성장기술 시설투자 수준)를 추진하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해외 M&A 인수금융 지원협의체'도 구성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소재·부품 분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규제 완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주 52시간 근무제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관련 법제도 손질도 추진한다.

이를테면 신규개발 수출규제 대응물질의 경우 불가능했던 선(先)제조를 한시적·조건부로 인정하거나 수출규제 대응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하는 것이다.

또 노동 분야에선 소재부품산업 추가연장근로가 불가피할 때 특별연장근로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기업간 강력한 협력모델 구축…민간투자도 강화

국내 기업 간 협력모델 구축도 돕는다. 소재부품 관련 수요-공급 기업 간 수직적 협력과 수요-수요 기업 간 수평적 협력을 위해 '자금+입지+세제+규제특례' 등을 패키지 형태로 지원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이를테면 △공급-수요기업이 공동산업단지 조성시 수도권 우선배정(입지) △수요기업 공동으로 공급기업에 R&D 및 설비투자시 세액공제(세제) △공동R&D에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 사전인가(규제특례) 등이다.

민간 투자에 대한 밀착 지원도 강화한다. 미래자동차, 반도체 등 13개 소재·부품·장비 양산설비 투자에 대해 입지·환경 규제완화 등 애로 해소를 돕겠다는 것이다.

또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해 연기금, 모태펀드, 민간 사모펀드(PEF), 개인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 등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경쟁력의 핵심인 특화 전문인력 공급과 글로벌 수준의 전문기업 육성도 본격화한다.

전문기업 육성의 경우 소재·부품·장비 분야 글로벌 전문기업(GTS·Global Top Specialty) 100개 육성, 강소·스타트업 기업 각각 100곳 육성 등이 핵심이다.

여기에는 100억원 규모의 융자 및 30억원 이내 기술보증 등의 자금 지원 방안 등이 담겼다.

◇부총리 주관 경쟁력위원회 등 범정부 지원조직 신설

정부는 앞으로 이러한 대책 추진 과정에서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기업지원을 위해 '산업부 주관 범정부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도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긴급 지원 대상 품목을 선정하고 대상별 전담관도 지정한다.

또 온라인상에서 품목별 적정 일본 CP(Compliance Program·자율준수프로그램) 기업을 검색·매칭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일본 CP 제도 활용 설명회도 8월 중 개최하기로 했다.

경제부총리가 위원회를 맡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도 설립한다. 이달 중으로 위원회 및 실무추진단을 신설하고, 장관급 회의체를 구성해 경쟁력 강화 계획 심의와 입지·환경규제 특례, R&D·자금 지원 계획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소재·부품특별법의 전면 개편도 추진한다. 2021년 일몰 예정인 소재·부품전문기업특별법을 상시법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특별법'으로 바꿔 대상을 장비까지 확대하고,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강력한 규제 특례 근거 규정을 확대할 방침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근본적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소재·부품·장비산업이 가진 구조적 취약점을 해결하는 것이 이번 대책의 큰 의미"라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제조업이 새롭게 혁신해 도약하는 기회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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