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 산업 주도권 중국에 빼앗길 수도

[비지니스코리아=윤영실 기자] 일본 수출규제에 한국이 맞대응하면 양국 모두 경제 손실이 커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30% 감소하면 한국은 약 40조원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입게 된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이번 사태 근본 원인은 정치외교 실패로 의제를 발굴해 양국이 대화를 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지적은 한국경제연구원이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연 긴급 세미나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 빛 해법’에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 소재가 30% 부족해지면 국내총생산이 한국은 2.2%, 일본은 0.04%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양국간 피해 규모 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일본 경제제재의 영향과 해법 긴급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배상근 한경연 전무,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 센터장.
한국경제연구원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일본 경제제재의 영향과 해법 긴급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조경엽 한경연 선임연구위원,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배상근 한경연 전무,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 센터장.

여기에 한국이 반도체 및 관련 부품 수출규제로 대응하면 GDP 감소폭이 한국은 3.1%, 일본은 1.8%로 커진다. 일본도 충격을 받지만 한국 손실도 확대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물량 확보에 실패해 부족분이 45%로 확대되면 한국의 GDP 손실폭은 4.2∼5.4%로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보복에 나서면 양국 모두 GDP가 평균 1.2%포인트씩 추가 감소하는 '죄수의 딜레마'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보복이 강화될수록 일본의 GDP 감소폭은 줄어들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일본 내 독점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 수출기업을 일본 내수기업 또는 중국 기업 등이 대체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일 무역 분쟁으로 확대하면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며 "중국 GDP는 0.5∼0.7% 증가하고,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전기·전자산업은 한국과 일본의 생산이 각각 20.6%, 15.5% 감소하는 반면 중국은 2.1% 증가해 독점적 지위가 중국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조 위원은 "수출 규제가 자동차나 철강 등으로 확산하면 우리가 회복 불능으로 빠지는 정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전경련이나 상의 등에 구축된 민간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반도체 시장 전망과 과제' 발표에서 "반도체 산업 특성상 같은 제품이라도 거래기업을 변경하면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공정이 불가능하거나 불량이 발생할 수 있어서 대체 물질이나 대체 공급자로 100%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는 "반도체 핵심소재를 국내 중소기업 제품으로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무역 규제가 완화되면 품질이 우수한 일본 제품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선뜻 증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치밀하게 준비한 점 등을 감안하면 3개월 후에도 수출이 제대로 안돼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시나리오 확률을 점점 높게 보고 있다"며 "물량 감소로 가격이 올라서 이득을 보는 것 보다 가동률이 하락하는 데 따른 고정비 부담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 중 재정사정이 좋지 않은 업체들의 어려움이 예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센터장도 일본에 100% 의존하는 프리미엄 핵심소재는 특허 이슈로 인해 국산화가 어렵다는 데 동의하고 물량확보 어려움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우려했다.

노 센터장은 "소재 개발 업체에는 과감한 세액공제를 해주는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일본이 한국 기업만 아픈 제재를 하면 국제 공조가 어려워지므로, 그 전에 정부가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정치·외교 실패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일 통상환경의 변화와 대응방향' 발표에서 "한일 통상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과거사 문제를 두고 정치적 관리체계가 깨진 데 있다"며 "정치·외교적 실패로 발생한 문제를 통상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해결 의지가 약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교수는 "산업무역 구조상 한국이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맞대응 전략은 '보여주기'식 대응에 지나지 않으며 대화 의제를 발굴해 한일정상회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2일 일본과 실무협의에 관해 "수출 제한 때 상대국에 미리 통보하고 협의를 해야 하는 걸 일본이 안했는데 이 때 하겠다는 것"이라며 기대를 걸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제여론을 환기시켜 일본이 규제를 철폐하도록 해야 한다"며 "일본은 그동안 가해자였는데 지금은 한국이 국제 협정도 안지키고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며 판을 바꾸려고 한다"고 우려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일본산 불매운동과 일본 관광 자제 논의는 효과가 불확실한데다가 보호주의 조치로 인식돼서 일본 정부에 재보복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앞서 권태신 한경연 원장도 개회사에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생태계 전반에 파급 효과가 미칠 것"이라며 "기업 신용강등이나 성장률 저하에 이르기 전에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 위원장은 축사에서 "강대강 전략을 쓰면 안되고 불매운동 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는 자제해야 한다"며 "침착하게 실리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Busines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