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기술탈취 첫 적발

[비지니스코리아=최문희 기자] 굴삭기 등 건설장비 제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가 납품단가를 낮출 목적으로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혐의로 수억 원 과징금을 물고 검찰 수사도 받게 됐다.

원가 절감을 위해 기존 하도급업체와의 계약을 끊고 다른 업체와 거래를 시작하려했지만, 해당 업체의 기술력이 부족해 품질에 문제가 생기자 기존 업체에게 받아놨던 기술자료를 전달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과정서 확인된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기업 기술유용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첫 처벌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두산인프라코어에 과징금 3억 7900만 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함께 부장·차장·과장 직급 담당 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23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 말 '에어 컴프레셔' 납품업체인 '이노코퍼레이션'에 납품가격을 18% 낮춰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자 두산인프라코어는 제3업체에 핵심 부품 제작의 용접·도장 방법, 부품 결합 위치 등 상세한 내용이 담긴 제작도면 31장을 2016년 3월∼작년 7월까지 5차례 전달해 에어 컴프레셔를 개발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제3업체가 납품을 시작하자 이노코퍼레이션은 지난해 8월 공급업체에서 완전히 배제됐으며, 이에 따라 납품단가는 모델에 따라 최대 10%까지 낮아졌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하도급업체 도면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2015∼2017년 30개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승인도'라는 이름으로 기술자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원사업자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만, 요구목적과 비밀유지 방법, 요구일·제공일·제공방법, 대가, 요구의 정당성 입증 등 7가지 사항이 기재된 서면으로 요구하도록 하도급법은 규정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단 한 건도 서면을 제공하지 않고 하도급업체 도면 총 382건을 확보했고, 2016년에는 이노코퍼레이션에 추가 자료도 요청했는데, 이노코퍼레이션이 추가 제출한 자료는 바로 제3업체로 보내져서 이 업체의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것이 공정위 조사 결과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또 다른 하도급업체인 '코스모이엔지'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냉각수 저장탱크 납품업체인 코스모이엔지가 지난해 7월 납품가격을 올려달라고 하자 거절하고, 대신 이 회사의 냉각수 저장탱크 도면 총 38장을 넉 달에 걸쳐 5개 다른 사업자에게 전달했다.

이들 5개 사업자는 결국 조건이 맞지 않아 실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고 코스모이엔지는 현재 인상한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코스모이엔지 측의 도면 전달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는데, 공정위는 전달 행위 자체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처에 기술자료를 유용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하도급업체들이 두산인프라코어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기술자료를 제출하며 비밀유지 의무를 요구하기는커녕 비밀 표시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피해 사실 진술을 위해 공정위 심판정에 출석해 달라는 요청에도 응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혁신 유인을 저해하고 우리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가장 중대한 위법 행위"라며 "이번 사건은 기술유용 사건 처리에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관행이었고 관리소홀인 부분이 있지만 잘못은 잘못"이라며 "이번 기회에 엄격한 기준을 도입해 같은 일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공정위 처분에 따른 대응은 "앞으로 송달될 의결서를 보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Businesskore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